[성경공부]2020.07.27_욥기 16장_최철규목사님

2020. 7. 27. 11:33카테고리 없음

[욥기 성경공부]

16:1-22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그만해라, 많이 먹지 않았냐)

영화 ‘친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가 외국어로는 어떻게 표현될 지는 모르겠다. 영화는 절친이었던 사람들이 서로 대적하다가 끝내 친구를 죽게 하는 상황까지 가는데 죽는 마당에 친구라는 것을 내려놓는 영화이야기다. 영화의 작품성은 없어 보이지만, 영화 ‘대부’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조폭영화로 악한 인간현실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4명의 친구들은 욥을 향하여 반복되는 충고 아닌 충고로 고통을 더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누구의 말이 옳은지 논쟁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가 재난의 위로자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너희들처럼 남의 일로 말할 수 있다, 그만해라!”(1-6절)
주님도 나를 이렇게 만드셨으니, 마치 17:1로 싸우다가 결국 처참히 죽는 주인공의 최후의 모습이다.(7-17절), 그의 표현이, 나를 부서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12절), 화살을 쏘아 허리를 뚫으시고 쓸개로 땅에 흘러나오게 하신다(13절)는 것처럼 심한 표현으로, 현재 맞아 죽고 있는 그 자체이다. 결국 주님은 나를 원수로 삼아 찾아 공격하신다는 것으로 말한다.
그럼에도 욥은 슬픈 중에도 자신의 정결을 언급한다.(16,17절) 이 말은 친구들을 보내시고 자신을 괴롭게 하시니, 결론적으로 주님의 칼 앞에 죽어가는 장동건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끝내 욥은 다시 회상에 젖는다. 차라리 죽었어야 했는데, 주님은 마치 욥을 죽이기 전에 지독하게 고통으로 고문하시는 것 같은 심정으로 말한다. 영화 ‘친구’에서 “니가 가라 하와이”의 대사처럼 친구들로 하여금 자기를 억지로 배려하고 있다는 인식을 준다.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22절)

친구가 배신하면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서러울까? 아브라함에게 주님은 친구라고 하시고 복을 주셨었는데, 지금은 완전하고 영원하신 친구같은 주님께서 욥을 배신한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할까.

....................
생각해 볼 것들.
사면초가에서 붙잡고 의지할 것은 무엇인가?
소망이 끊어져 죽으려고 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적용점)
죽음 앞에서도 내려놓는 지혜를 배우자.
모든 사역과 삶이 끝나기 전에 미리 준비하자.

 


삶을 살아갈때 가족 친구 지인을 의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방법같다. 기쁜일이 있을때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고 슬프고 힘든일이 있을때에는 위로를 받는것이 우리네의 삶이다. 그런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아라고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은것 같다

그래도 주님에게 먼저 기도하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그런 기준이 서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내가 되길 바란다.